3월, 2026의 게시물 표시

[영산김씨] 영산김씨(永山金氏)는 영동(永同)김씨라고도 합니다. 참봉공파의 후손 한은 김재규 선생의 친필 10폭 병풍을 번역하였습니다.

이미지
영산김씨는 영동김씨이다. 현재의 충청북도 영동지역은 신라시대에 길동(吉洞), 영산(永山), 계산(稽山) 으로 불리다가 경덕왕(757년)때 영동(永同)으로 바뀌었다. 고려 성종(995년)때 계주(稽州)가 되었다가 10년만에 폐지되었다. 당시 가문들은 이미 영산을 본관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 후손들은 옛 이름인 영산 대로 영산김씨(永山金氏)를 유지하여 영동김씨와 두가지로 불리어지게 된 것이다. ​ 시조 김영이(金令貽)는 신라 神武王의 넷째 아들인 김익광(金益光)의 후손이라고 한다. 시조 김영이는 고려 충숙왕 말기 때 전객서령(典客署令)을 지내고 죽은 후에 공신으로 검교도첨의찬성사에 추증되고 영산군(永山君)에 추봉되었다. 시조의 아들 김길원(金吉元)이 공민왕 때 홍건적을 토평한 공으로 영산부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영산(현재의 충북 영동)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영이의 증손자인 김훈(金訓)이 1399년(조선 정종(定宗)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사사소윤(典祀寺少尹)을 지냈다. ​ 김훈의 아들인 김수온(金守溫)도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에서 치평요람, 의방유취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문장과 학문에 뛰어나 명나라에까지 이름을 떨치고 성종 2년(1471년)에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474년(성종 5)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에 이르렀다. 묘는 한곡리에 있다. 그의 형은 세종의 한글 창제를 도운 것으로 알려진 신미(信眉)대사이다. ​ 충북 영동군 용산면을 세거지로 하는 참봉공파의 후손인 한은(閑隱) 김재규(金在奎, 1900~1973)선생은 한곡리에 은둔하면서 稽北書屋(계북서옥, 계북(영동)의 북쪽 글방)을 열고 후학에게 시설를 강론하였다. 집안 유품으로 전해져오는 10폭 병풍을 번역하였다. ​ 한은(閑隱)선생은 10폭 병풍에서 후손에게 내리는 좌우명을 4언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큰 나라가 될 것이라는 기원, 산촌 마을의 경치와 백성이 사는 모습을 칠언절구로, 계북서옥의 내력과 가르침...